이른 아침
회사원이 되고 난 뒤, 깨닫게 된 점이 하나 있다. 나는 대문자 J였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급작스러운 상황에 크게 개의치 않고 유연하게 대처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셀프 캐해를 하고 있었건만(심지어 자소서에 그런 내용을 강점으로 쓰기도 했다). 아니었다. 나는 외세(?)에 의해 나의 일상과 계획이 깨지는 걸 누구보다 싫어하고 스트레스받는 사람이었다.
어딘가에 소속된다는 것은 나의 일상이 더 이상 온전히 나의 의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일의 회의, 모레까지 끝내야 하는 일들, 다음 주 닥쳐올 것들, 그리고 마케터의 숙명처럼 느껴지는 갑작스럽게 주어지는 일들까지. 나의 하루는 앞으로 있을 것들과 일어났던 일들로 인해 이리저리 조정되고 우선순위가 뒤바뀌곤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에게는 아침 시간이 있다는 사실이다. 아침은 내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다. 아침은 많은 부분이 예측 가능하다. 변수가 적으므로 내가 원했던 일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해낼 수 있다. 아침은 대게 고요하고, 계획된 시간에 버스가 오고, 정적이다.
회사원이 되고 난 뒤 나에 대해 깨닫게 된 또 하나의 특징은 인파를 싫어한다는 점이다. 특히 출근 시간에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데, 지하철로 출근해야만 했던 시절에는 내 앞과 옆, 그리고 뒤 사람을 저주하느라 그날의 에너지를 다 써버리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사실 그 사람들은 그냥 내 주변에 있었을 뿐이다.)
사람이 없고 조용한 이른 아침 시간은 나에게 진정제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이른 아침 타는 버스는 사람이 별로 없을 뿐더러, 옆 승객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고, 버스 자체에서 나는 약간의 소음 외에는 모든 것이 조용하다. 잠들어있는 승객들 마저 도롱도롱 조용하다.
다른 어떤 시간대보다 온도가 낮은 것도 마음에 든다. 더위를 많이 타기에 더운 날에는 축 쳐져 있기 일쑤지만, 아스팔트 온도가 미지근하게 식어있는 아침이라면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겨울은 겨울 나름대로 콧속까지 시린 공기를 만끽하는 재미가 있다.
아침에만 선명하게 들리는 소리도 좋아한다. 회사 근처 헬스장 건물 관리인은 대게 6시 정도에 건물 밖에 물을 뿌려 물청소를 하시는데, 그 물이 바닥에서 흘러가는 소리와 주변 가로수에서 새가 푸드덕 움직이는 소리, 그리고 어렴풋이 들리는 청계천 물소리 등을 들으며 걷고 있노라면 관리인 아저씨와 나만 기억할 수 있는 어떤 특별한 추억이 생긴 것과도 같은 기분이 들어서 어쩐지 오묘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침은 나에게 있어서 나를 나답게 존재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시간이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잘 활용하고 싶은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