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수건 개는 일이 주는 안온한 행복
일요일 아침, 뽀송하게 마른 수건 빨래를 개는 시간을 좋아하게 된 건 신혼 3개월 차부터였다. 어느 볕 좋은 이 시간, 거실 바닥에 앉아 베란다를 바라보며 수건을 개는데 그 순간 느낀 여유로운 행복을 잊을 수가 없다. 하루 한 시간 간격으로 울리는 구급차 사이렌 소리, 간판이 빽빽하게 배열된 상가 건물을 정면에 두고 겨우 두 사람 앉을 만한 작은 거실의 아파트였는데도 말이다.
그때부터 다른 곳에 이사 온 지금도 여전히 이 시간을 좋아한다. 가끔은 이 시간을 꼭 사수하기 위해 애를 쓰기도 한다. (그래서 일어나자마자 세탁기로 향한다…) 단순히 신혼이기 때문이라는 말로 단정하기에는 아깝다. 심지어 남편은 같이 빨래를 개지 않으니까 말이다.(단호) 나는 왜 이토록 이 시간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안온한 나만의 공간'이라는 것. 집에서 느긋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이렇게 행복했다니? 스스로 밖순이라 자처할 정도로 외출을 무조건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공간에서 쉬고 있는 기분이 든다. 안정감이 주는 행복일까? 꽤나 거창한 표현 같아 민망하지만, 인기 있는 카페를 가봐야 한다던지, 유명한 전시를 봐야 한다던지 등 '무언가를 해야 한다' 강박에 꽁꽁 싸여있던 나를 풀어놓은 듯하다. 날씨가 맑든, 우중충하거나 비가 오든. 있는 그대로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때로는 무언가를 해도 온전히 나를 나로서 바라보는 상대와 함께 공유하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마음에 정말 큰 감동과 여유를 준다.
'뽀송한 수건'을 개는 것 또한 중요한 이유다. 갓 건조되어 열기를 머금은 수건을 한번 쓱 털어 호텔 수건처럼 각 잡고 정성스레 갠다. 뽀송한 수건을 만지는 것부터 호텔 수건 하나하나 쌓일수록 뿌듯함이 더해진다. 아무 생각 없이 하지만 분명 성취가 쌓이는 일이다. 참, 여기에 조금 이상한 포인트지만 내 스타일대로 잘 개고 있는데 느지막이 남편이 거실에 나와 같이 거들면, 틀이 깨지는 것 같아 심기가 불편해질 때가 있다. (남편둥절.. 도와준다는데;) 결혼 전에는 엄마가 수건 개라고 시킬 때 그렇게 툴툴거렸는데. (엄마 미안..)
조금의 tmi를 더해보면 흔해진 유튜브 영상 타이틀 '삶의 질을 높여주는 아이템' 중 top 5 중 하나일 건조기는 이미 많은 호평으로 알고 있었지만 수건은 나에게 센세이션 했다. 30여 년 간 수건은 누군가의 결혼식, 돌잔치, 회갑연 등 선물로 받아오는 게 일반적이라 장당 거의 2만 원에 달하는 수건을 산다는 건 꽤나 고민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 차례 써보고 난 뒤에는 '이걸 왜 고민했지?' 싶지만 말이다. '부드러운 촉감이 내 온몸을 감싸는' (사랑 노래 가사 같군요..) 이 도구는 비싼 값을 톡톡히 해낸다.
월요병 환자에게 출근까지 아직 그래도 20시간 넘게 넉넉히 남았다는 사실 역시 일요일 아침이 좋은 이유 중 하나다. 느릿하게 빨래를 개고도 시계를 보면 11시다. 다시 침대와 소파에 몸을 내던져 책을 보거나 실컷 콘텐츠를 보며 뒹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일요일 아침은 그저 사랑이 될 수밖에 없다.
구구절절 써보니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으로서 평온하게 작은 성취를 모으는 시간들을 사랑하는구나. 아무리 신나고, 자극적인 재미를 주는 일도 매일 발생하면 몸은 물론, 마음도 지치기 마련이다. 다채로운 생각을 바쁘게 하면서 보내는 일주일의 모든 시간을 늘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느릿하게 생각을 비우고 보낼 수 있는 이 시간을 참 사랑하는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어 기쁘다. 앞으로도 여전히 일요일 아침 뽀송한 수건을 개는 시간을 애써 만들고, 멈추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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