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좋아하세요?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잘 모르는 나의 미래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은. 어느 날 선생님께서 교탁 앞으로 나를 불러 세웠다. 내가 쓴 일기를 반 친구들 앞에서 칭찬해주고 싶으셔서였다. 방학 숙제로 일기 쓰기가 있었는데, 쓸 말이 없어 일기장에 적은 동시를 선생님께서 사랑스럽게 읽어봐 주신 거였다. 영문도 모른 채 친구들 앞에 서 있는 나를 두고 선생님은 내가 적은 시를 천천히 읽어봐 주셨고, 친구들의 박수와 선생님의 칭찬을 받았다. 서른 명이 넘는 사람들의 시선과 선생님의 사랑이 담긴 음성을 들으니 내 안에 어떤 힘이 생겼다. 뭔가를 써 내려갈 수 있는 힘이었다.
글쓰기를 좋아하나요,라고 물어보면 별 거리낌 없이 좋아한다고 대답한다. 애벌레처럼 읽는 사람은 결국 쓰게 된다고,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라는 책 속의 김시선 할머니는 말했다. 애벌레처럼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결국 쓰면서 살고 있다. 학창 시절 글쓰기 대회에 나가 몇 번 상을 타고, 싸이월드나 블로그에 쓴 글을 두고 잘 쓴다는 얘기를 듣고, SNS에 적어 올린 글로 일자리를 얻게 된 일을 몇 번 경험하면서 알게 되었다. 이게 내 재능이라는 것을. 이 일을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글쓰기는 나를 겸손하게 해 준다.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생각을 글로 옮겨놓고 보면 가끔은 느낀다. 얼마나 허튼 생각이 많은지, 혹은 어떻게 이렇게 생각이 없을 수 있는지. 분명 나로부터 나온 글인데 사랑할 수 없는 글들도 많다. 글쓰기는 나로부터 조금 멀어져서 달리 생각할 수 있게 하는 틈을 선물해 준다. 사람은 자기와 떨어져서 자신을 볼 수 없어서, 머릿속에서 자꾸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생각을 글로 옮길 때에야 나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매일 책상 앞에 앉아 빈 메모장을 바라본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빈칸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고민하고 애쓰며 하루를 보낸다. 내가 고르는 단어와 적어가는 문장들이 읽어줄 누군가에게 의미 없는 단어뭉치가 되지 않길 바라며 끙끙대는 하루를 보내면, 조금 녹초가 된다. 아무리 좋아한대도 매일같이 좋아할 수 없는 건 당연한 거겠지. 좋은 글쓰기에 실패한 것 같은 날에는 글쓰기가 미워지기도 하지만, 아마도 계속해서 글을 좋아하며 살 것 같다.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만큼 글쓰기도 나를 더 많이 좋아해 주기를 바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