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글쓰기가 있으신가요?
좋아하는 글쓰기가 있냐는 질문은 처음 받아봤다. 좋아하는 책이나 읽을거리에 대한 질문은 받아봤지만 쓰기에 대한 질문은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이 질문 하나로 나는 읽는 주체에서 쓰는 주체가 되었다. 얼마나 기분 좋은 질문인가.
쓰는 사람이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나는 어떤 글쓰기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답을 하려고 하니 막상 명확하게 떠오르는 답변이 없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어떤 것을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파악하려면 충분한 경험이 있어야 하는데, 글쓰기 취향을 말할 정도로 글을 써본 경험이 있지는 않다. 그래도 한 가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글쓰기에 대해서 오랜 관심을 가져왔다는 정도이지 않을까. 비록 관심이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그 관심 덕분에 글쓰기 실패의 역사 정도는 쌓였다. 모든 실패에서도 얻을 게 있다고 하지 않나. 이 실패를 통해서 얻은 것은 적어도 ‘이런 글은 진짜 쓰기 싫다!’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을 파악할 때 좋은 것 보다도 싫어하는 걸 말했을 때 그 사람이 더 명확하게 파악되기도 하니, 내가 왜 글쓰기를 실패해 왔는지 나열해 보면 조금이나마 취향 파악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에게는 올해로 만든 지 딱 10년 된 블로그가 있다. 아마 십 년 전에도 어떤 글들을 쓰고 싶어서 만들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저 혼돈의 카오스 같은 공간이 되어 버렸다. 카테고리만 봐도 맛집, 쇼핑, 뷰티 리뷰도 있고, 사진에 대한 한 줄 일기를 쓴 글도 있고, 일과 관련된 내용을 적은 글도 있고 나는 어떤 글을 써야 할까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보인다. 처음에는 가장 쉽게 작성할 수 있는 내돈내산 리뷰 글들로 조회수를 높이고자 했다. 그러다 보니 내 글을 읽는 사람이 많아지고, 블로그로 경제적 이득을 맛볼 수 도 있었다. 미용실에서 공짜로 머리도 해보고, 협찬 제품도 받고 “이대로 전문 블로거가 되어야 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건 얼마 가지 않았다. 재미가 없었고 내가 글을 열심히 쓰게 되지 않았다. 어느 순간 내 블로그에 쌓인 글을 돌아봤을 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일상에는 블로그가 크게 차지하고 있는데 주변사람들에게 차마 “내 블로그야”라고 소개하기가 부끄러웠다. 그래서 그다음은 조금 더 내 생각을 담을 수 있는 일상을 남기고자 했다. 근데 블로그에 사진을 붙이고 일기를 쓰다 보니 “오늘은 이걸 먹었다” “오늘은 여길 갔다” 등 단순하게 사진에 대한 설명을 나열하게 되고, 우선순위는 글보다 사진이 되었다. 아 이것도 내가 원하는 글쓰기는 아닌데라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 내 블로그를 구독하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친구에게 요즘 행복하게 사는 것 같다고 부럽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왜 내가 쓰는 사진 일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막상 그 장소에 가고, 그걸 먹었던 그때의 나는 힘든 시기였는데, 내가 남긴 기록들은 나를 대변할 수 없었다. 그때 깨달은 게 “요즘 넌 어때?” “넌 누구야?”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되는 글들이 남겨졌으면 좋았겠다 나는걸 깨달았다. 물론 이걸 깨닫고 난 이후로 스스로 글쓰기에 대한 검열은 더 심해졌지만, 이제 나를 대변할 수 없는 글이 싫다는 것 하나만은 확실하게 깨닫게 됐다. 이런저런 말을 하다 보니 괜히 글이 길어진 것만 같은데, 어쨌든 언젠가는 글에서 내가 묻어 나오는 삶이 글이 되고 글이 삶이 되는 것들을 쓰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