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기대된다
내가 태어나서 가장 오래 한 일은 약 17년 간 학교를 다닌 것이다. 의무교육과 고등교육, 대학생활까지 합쳐 인생의 반 이상을 꾸준히, 지치지 않고 한 일. 그런데 그것과 거의 비슷한 기간동안 한 일이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바로 글쓰기다. 초등학교 때 여름방학 숙제로 냈던 표어와 독후감, 절친과 쓰던 교환일기, 커 가면서 나만의 대나무숲이 되었던 일기들이 내 글쓰기의 시초다. 아쉽게도 그때 썼던 글들은 지금 하나도 남아있지 않지만, 어릴 때부터 썼던 다양한 형태의 글들이 내가 ‘글’이라는 것과 친해지게 해 주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나의 내밀한 부분을 털어놓던 나의 글은 다른 누군가를 위한 글로 바뀌었다. 교수님을 위한 레포트부터(사실 나 공부하라고 교수님이 시킨 건데 그땐 그걸 몰랐지…) 회사에서의 기획안, 월간 운영안, 각종 보고서 등등. 그러면서 글쓰기는 점점 재미없는 일이 되어갔다. 써야 하는 건 알지만 귀찮은, 그러나 잘 써야 하는. 누군가가 원하면 끝도 없이 수정해야 하고, 또 남에게 평가를 받기도 하는 일. 때마침 불어닥친 퍼스널브랜딩 열풍은 글쓰기에 대한 압박감을 절정에 달하게 했다. 쓰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 같은 마음, 지나치게 잘 쓰고 싶은 마음에 정작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마음이 나를 얼마나 오래 괴롭혔던지.
글쓰기에 대한 마음을 바꿔준 것은 ‘다함께글쓰계’라는 이름의 특이한 모임이었다. 혼자 쓸 때보다 다 함께라 재밌고 든든한 글쓰기 모임이라는데, 여기서는 뭐라도 쓸 수 있을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들어간 모임에서 사람들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요즘 느끼는 감정과, 일상적이고도 철학적인 주제에 대해 썼다. 쓰고 나서는 다 함께 읽었고, 서로 짧은 감상평을 주고받았다. 모임 멤버들이 내 글을 읽고 남겨주는 댓글을 보며, 글을 쓰는 재미란 이런 거구나 생각했다. 내가 쓴 글을 반드시 읽어주는 독자(모임 멤버들)들을 통해, 에세이에는 일기와 다르게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의 맥락'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도 배우게 됐다. 그런 경험들이 쌓여, 이제는 무언가를 보면 글이 쓰고 싶어 진다. 글을 통해 나의 경험과 생각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큰 변화다.
어떤 일이든 최소 10년을 하면 전문성이 쌓인다는데 나의 글쓰기는 벌써 20년을 향해 간다. 강제로 했던, 원해서 했던 꾸준히 해 온 글을 쓰는 일. 올 한 해도 글을 쓰면서 많이 배웠고 더 많이 웃었다. 그럼에도 마무리 문단을 교훈으로 끝내는 습관은 고치지 못했네. 하지만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나는 글을 쓸 거니까 쓰다 보면 점점 더 내 맘에 드는 글을 쓸 수 있겠지. 내년에 만날 나의 글들이 벌써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