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좋아하는 글쓰기'라는 수식어는 어색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애증 하는 글쓰기'가 좀 더 적절할 듯싶다. 글을 쓸 때마다 새하얀 문서창을 띄워두고 노려보기도 하고 한참을 키보드 ㄹ과 ㅓ에 튀어나온 부분을 매만지며 아무 생각도 못한 때도 많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다…)
학창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받아봤을 글짓기대회 상장 하나였는데, 이를 계기로 글쓰기가 나와 30여 년 이상을 함께할 줄이야.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지는 않지만 감정과 생각은 강렬하게 남았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는구나, 이걸 일로 삼아야지" 라고. 중2병에 걸려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가던 당시에도 엄마의 잔소리를 들은 날, 친구와 사이가 안 좋아져 고민이 많았던 날 등 매일의 생각과 감정을 기록하며 그렇게 마음을 다스려올 수 있었다. 떠올려보니 대학교 때 믿었던 두 친구에게 배신당했을 때도 블로그에 치기어린 글을 쓰며 해소했었구나. 돌이켜보니 좋았던 순간들보다 안 좋았던 일이 있을 때 누군가에게 푸념을 하듯 노트와 펜을 꺼냈다. 글쓰기는 아무런 조건과 목적이 없어도 나를 반겨주는 행위였던 셈이다.
취업을 준비하던 당시, 내가 믿을 건 글 쓰는 일에 거부감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생각을 기록하는 일을 늘 좋아했으니, 일에도 이 마음을 적용하면 되겠지.’ 이 선택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글쓰기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동시에 받는 행위가 되어버렸다. 일을 하면서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해졌다. ‘잘 쓴 글’의 기준을 정의해 볼 새도 없이 그저 누군가에게 피드백을 받고 수정을 하느라 급급해졌다. 또 맛깔나는 글들을 보며 나의 부족함에 좌절하곤 했다. '고작 글쓰기 대회 동상 하나였는데, 왜 이걸 일로 삼았을까'.
여전히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저 무언가 몽글몽글한 마음이 피어오르는 순간. 기분이 좋아서 이 감정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을 때나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답답할 때, 때로는 심심할 때도. 그저 노트, 펜과 키보드를 펼친다. 대신 매일 꾸준히 좌절과 보람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내성이 생긴 탓인지 새하얀 문서창을 눈앞에 두고 한숨을 쉬거나 키보드를 매만지는 행위는 똑같지만, 그 고민의 끝에는 '아무렴 어때'가 있다. 그저 내가 하는 이 행위가 나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린 걸. 그래서 오늘도 나는 아무렴 어때를 시작과 끝으로 글을 쓰고 앞으로도 그렇게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