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기자를 꿈꾸는 기린이 나오는 동화를 읽었다. 목이 길어 여러 사건을 잘 발견할 수 있는 기린은 작은 동네 신문사의 기자가 되어 동네의 나쁜 소식들을 찍어 기사를 쓰는 일을 맡게 된다. 고슴도치 부부가 치약을 짜는 방식으로 싸우는 일, 코끼리 세탁소의 주인과 손님이 다투는 일 등 작은 동네에는 매번 새로운 나쁜 사건들이 등장했고, 기린을 손쉽게 사진을 찍고 기사를 작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웬걸? 막상 사건 현장을 찍은 필름을 현상하고 보니 모두 웃고 있다. 화가 난 동물도, 싸우던 동물도 모두 사진기 앞에서는 웃는 표정을 지었던 것이다. 결국 기린은 나쁜 소식을 기사로 쓸 수 없었고, 대신 동네의 좋은 소식을 전하기로 기획을 바꾼다. 그리고 동네에서는 매번 좋은 일이 끊이지 않았다는 줄거리다.
나의 글도 그렇다. 슬프고 아픈 글은 쓰고 싶지 않다. 특히 누군가가 읽고 상처받는 글은 더욱 피하고 싶다. 이왕이면 재밌는 글, 한 번쯤은 피식하고 웃게 되는 글, ‘나도! 나도!’라고 말하고 싶어지고 읽고 나면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글이 쓰고 싶다. 쓰고 난 나도, 읽은 남도 마음속에 찝찝함이 남지 않는 글. 그런 글을 쓰고 싶고, 그런 글을 쓰는 게 좋다. 내 글의 주제가 주로 나인 건, 아마 그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고민이 된다. 나는 너무 나의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에서 남으로 확장된 글을 써야 하는 건 아닐까, 안전한 글을 넘어 조금은 위태롭더라도 하고 싶은 말을, 혹은 해야 하는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사실 남이 좋아해 주길 바라는 글은 아닐까.
그런 고민을 하다가도, 나는 아직 나도 잘 알지 못해서 다시 나를 쓰는 글로 돌아온다. 쓰면서 피식 웃게 되는 내가 좋아서, 중간중간 나만의 유우머를 섞는다. 혹여 누가 아파하진 않을까 살피며 문장을 지운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일까를 고민하면서도, 일단은 꾸준히 오랫동안 쓰고 싶다. 조금 무책임하지만 좋아하는 글쓰기를 오래 하다 보면 언젠가 좋은 글도 쓸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믿어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