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대한 글을 종종 써왔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여행을 시작하면서부터 글을 써 글이 모이면 구독자들에게 뉴스레터로 보내주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월간 이슬아>의 글 구독 방식과 작가 태재의 <멀리메일>을 적절히 참고한 프로젝트라고 할까.
2주 동안의 일기를 10개의 편지로 모아 보냈던 다소 도전적인 목표였는데 보내는 중에도, 10개의 메일을 모두 보낸 지금에도 얻은 점이 많다.
가장 먼저, 실시간으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쓰고, 생생한 감정을 담을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다. 평소 좋지 않은 감정을 느끼는 민감도도 낮고, 잠을 자고 나면 좋지 않은 감정이 바로 사라지는 편이라 휘발되는 감정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매일 글을 쓰다 보니 그날에 생각하고 겪은 감정이 그대로 담겼다. 예를 들면, 서핑을 하러 나가 하루는 정말 서핑이 잘되기도 했고, 바다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생겨 ‘앞으로 나는 바다를 어떻게 대하겠다’라는 다소 호전적인 다짐을 썼다. 하지만 다음에 보내는 편지에는 ‘저번에 할 말 취소합니다’라고 쓰고 그 마음이 어떻게 부서졌는지 반성하는 글을 썼다.
하루를 회고할 수 있는 시간을 자주 갖게 되는 것도 좋은 점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도 해야 하고, 보고 경험할 거리도 많다 보니 눈 뜨면 한국으로 돌아왔던 적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여행기를 보내는 뉴스레터를 쓰며 매일을 회고했다. 자꾸 오늘을 돌아보면서 내 속절 없는 마음의 이유를, 내가 좋아하는 레스토랑에 대한 이유를, 내가 행복함을 느꼈던 이유를 찾게 되었다.
읽는 사람이 있는 글을 쓰고 있다는 감각을 인식하게 된 것도 좋았다. 내 글을 기다리고, 읽어주는 구독자가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은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이전에도 뉴스레터로 글을 발행한 적은 있지만, 정보성에 가까운 글이라 글 옆에 ‘읽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크게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여행 뉴스레터에서는 글을 쓰는 내내 구독자와 함께 있었다. 아무래도 여행을 하면서 겪는 모든 상황과 내밀한 마음을 공유하다 보니 끈끈함을 느끼게 된 것 같다. 특히 발행할 때마다 오는 답장이, 인스타그램 DM이 구독자가 있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인지하게끔 했다.
‘매일 글을 쓰는 삶’에 대해서 상상한 적이 있었는데, 언제나 그런 삶을 영위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경험으로 그런 삶의 방식도 가능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책을 읽거나 글을 조금 쓰고, 요가를 하거나 서핑을 하고, 다시 글을 쓰고, 여행을 조금 더 하다가, 또다시 글을 쓰는 삶이 오히려 좋았다. 글을 쓰는 게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오늘은 어떤 글을 쓸지만 골똘하면 되었다. 습관을 가지니 글을 쓰기 위해 예열할 시간도 필요 없었다. 이렇게 글이 삶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자리하는 과정이 모든 순간 행복했다.
마지막으로 좋은 점은 여행에 대해 추억할 수 있는 글을 10편 갖게 된 것이다. 10개의 글을 모두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여행이 그리워질 때면 종종 스티비에 들어가 보낸 메일을, 왔던 답장들을 살펴본다. 벌써 느껴진다. 앞으로 내 생에서 나는 이 여행을 영원히 생생하게 추억할 수 있을 거라고. 이전에는 여행이 그리워지면 핸드폰의 사진 앨범을 들여다보았는데, 이젠 내게 ‘글 앨범’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