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만 하고 집에 들어온 날은 늘 조금 피로하고 글이 쓰고 싶어진다. 평소 말수가 적은 나는 대화할 때 자연스레 말하기보다 듣는 입장이 된다. 들으려 했다기보다 말하지 않았을 뿐인데 상대방에게 말을 잘 들어준다는 평을 듣는다. 얼떨떨하고 약간의 죄책감이 든다. 잘 들을 때도 있지만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가 더 많다. 듣기는 엄청난 관심과 수고가 필요한 일이라 노력하지 않으면 정신이 금방 딴 길로 새버린다. 가끔은 그 말에 반박하고 싶기도 하다. 아닌데. 나도 듣기보다 말하고 싶은데.
그러나 내게 말하기는 듣기보다도 어려운 일이다. 말하고 싶은 말이 없기도 하지만 있어도 하지 못할 때가 많다. 타인의 말을 끊지 않으면서 대화를 이어 나가는 순간을 아직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적절하게 치고 빠지며 잘만 하는 것 같은데 나만 어려운가 싶다. 드물게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나 말하려고 해도 번번이 누군가 먼저 타이밍을 가져가는 바람에 기회를 놓치고 화제는 금방 다른 것으로 넘어간다. 결국 말하지 못하고 입 안에서만 빙빙 맴돌던 말을 속으로 삼킨다.
삼킨 말이 많을수록 말하고 싶은 욕구는 배가 된다. 그럴 때면 혼자 있는 시간을 찾아 손으로 적든 키보드를 치든 글을 쓴다. 글쓰기는 제한이 없는 말하기 같다. 말한다. 말문이 막히면 침묵한다. 침묵은 짧게는 몇 분에서 몇 시간, 며칠, 길게는 몇 개월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다시 말한다. 말을 바꾼다. 말을 또 바꾼다. 갑자기 말하고 싶지 않아서 그만둔다. 그리고 또 말한다. 어느 누구와도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글쓰기의 자유로움이 나를 말하게 하고 더 말하고 싶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