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을 쓰고 알게 되었다. 내가 대사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걸. 대사를 쓸 때 되도록 길지 않게, 길다면 효과적으로, 보는 이가 어색함 없이 읽을 수 있도록 하려고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하는데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와 연이 닿은 사람들의 말투와 표정들이 생각나게 된다. 고백하자면 많은 이들의 말투와 표정을 얻어서 썼다.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함을 전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가끔은 끝이 안 좋았던 사람에게 일말의 고마움을 느낄 때도 있다.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에게 경험만큼 좋은 것이 어디 있겠나.
이제 막 글을 쓰는 것을 시작한 사람이라 많은 글을 쌓아두지 못했지만, 이번에 처음 함께 일했던 편집자님이 내게 알려주신 나만의 무기는 ‘넘쳐나는 에피소드’와 ‘실감 나는 인물 설정’이었다. 시간이 쌓아준 이야기들과 다양한 경험이 쌓아준 인물들의 특징을 눈여겨 봐주신 것이다. 왕초보 작가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오쏘몰 2개를 먹은 것 같은 힘이 난다. 그때부터 에피소드와 인물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대사 쓰기에 더 재미를 붙였다.
대사 쓰는 것을 좋아하게 된 이후로 나는 사람에 대해 조금 너그러워진 것 같다. 평소라면 질색했을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는 아주머니도 나의 소설 속 인물이라고 생각하면 금세 그녀의 속 사정이 무엇일지 궁금해 진다. 사랑하는 자식들이 최근 휴대폰을 새로 바꿔 주었는데 아직 기기에 익숙하지 않아 통화음량을 조절할 줄 모르는 것이라면? 요즘 휴대폰은 이렇게 소리가 작게 들리는구나 싶어 통화하는 상대방을 생각해서 크게 말하는 것이라면? 혼자 이런저런 설정을 만들어내며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기정떡. 기정떡을 만드는데 방앗간에서 막걸리를 많이 넣어 냄새는 별로지만 맛이 좋다고 한다. 그런데 상대방이 기정떡을 몰라서 그걸 설명을 하느라 말소리가 커진 것이다. 한참만에 잔기지떡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기정떡이 무엇인지 상대방을 이해시킨 아주머니는 이따가 막걸리가 많이 들어간 기정떡을 통화 상대에게 나눠주기로 약속하고 만족스럽게 전화를 끊는다. 목소리는 크지만 살림꾼에 나누기를 좋아하는 누군가의 어머니다.
덕분에 나는 60대 어머니들이 서로 이해가 안 가는 무언가를 이야기할 때 “아휴, 저, 그거 뭐야, 그거 있잖아 그거”라는 말을 자주 쓴다는 것과 “하얗고”가 “카이얗고”라고 들릴 정도로 단어 표현을 강조한다는 사실, 그리고 기정떡은 팥이 안 들어가야 더 쫀득하고 맛있다는 리빙팁까지 얻어냈다. 잠깐의 짜증을 뒤로하고 얻어낸 것 치고 꽤 값지다.
요즘은 그동안 만나왔고, 만나고 있고, 만나게 될 모든 이들의 말들을 값지게 여기며 살고있다. 타이핑으로 만들어낸 인물이 선명해 지기까지 많은 이들의 말과 표정이 머릿속을 스쳐가기 때문이다. 떠오르는 말이 예쁜 말 이면 예뻐서, 못난 말이면 못나서 좋다. 그렇게 덧대고 덜어내는 작업을 하며 캐릭터를 만들어 갈 때 무언가를 탄생시키는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 분명 내가 쓰고 있음에도 컨트롤되지 않고 제멋대로 써지는 대사를 보며 아슬아슬한 감정을 느끼기도 하며 만들어낸 인물을 구체화하는 과정이 좋다. 많은 사람들의 말을 뭉쳐 만들어진 대사로 인해 만들어낸 인물에 입체감이 생겼다는 확신을 느끼면 비로소 안심이 되고,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데에 추진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종종 생각한다. 대사 쓰는 것을 좋아하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부러 사람에 대해 기대하지 않고 무심하던 내가 이렇게 변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대사를 쓰며 당신을 생각한다. 내가 들은 당신의 모든 말들이 그저 소중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