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튼 웃겨
한때는 좋아하는 단어라면 주저 없이 떠올리던 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단어라기엔 문구 아니냐는 지적은 잠깐 넘어가자.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영어로 하면 Although 니까.) 지금도 꽤나 좋아하는 접속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쓰는 상황을 떠올려 보면, 어딘가 극적인 모습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궁지에 처한 주인공, 낙담할 수밖에 없는 상황, 반전이 필요한 어떤 시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에는 그 앞에 나온 모든 장해물을 멋지게 극복하는 말이 나올 것 같다. 하지만 요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좋아한다기엔 내 삶은 요즘 잔잔하고 평화롭다. 특별한 장해 없고 큰 스트레스가 없는 삶. 대신 요즘 좋아진 단어를 꺼내어 본다. <하여튼>!
<하여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처럼 극적이고 웅장하며 기적적인 단어는 아니지만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는 단어다. 특별히 멋지지도 않고 특색 있지도 않다. 어떨 땐 조금 민망하게 쓰이는 단어다. <하여튼>이 등장하는 상황은 주로 이런저런 얘기로 중언부언하다가 어떻게든 결론을 내려버리고 싶을 때, 아니면 도무지 설명이 잘되지 않는 어떤 느낌이나 감상을 꺼내고 싶을 때가 아닌가 싶다. 나는 그런 점에서 이 단어가 좋다. ‘지금까지 무슨 말을 했든 상관없어. 진짜 중요한 건 이거니까. 이것만 잘 들으면 돼.’라고 알려주는 지표 같달까.
<하여튼>이 좋아진 건 이전보다는 조금 더 나이를 먹어서가 아닐까 싶다. 조금 더 극적이고, 의미가 분명한, 선명하게 내 입장을 위치시킬 수 있었던 단어를 좋아했던 옛날과는 달리 요즘은 일상이 점점 두루뭉술해진다. 어린 날의 내가 본다면 뾰족함을 잃어가는 중이라고 손가락질할 테다. 아무렴 그럴 테지. 좋게 본다면 조금은 삐죽하고 날이 서 있던 어릴 적과는 다르게 조금 더 둥글둥글해진다는 뜻이겠지만,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지 하며 맹숭해지는 내가 정말 괜찮을까 싶기도 하다.
예전처럼 고민이 선명하고 단순하지 않다. 별 고민 없이 답을 내리고, 단순하게 한 쪽으로 입장을 정리할 수 있었던 때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좋았다. 어떤 어려움이 닥친대도 상관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거야!라고 외칠 수 있는 마음이 살아있던 때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점점 어려워진다. 흐려지고 빛바랜 마음 앞에서 꺼내는 쪼그라든 마음은 결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 있는 단점들과 상관없지 않다.
그래서 <하여튼>을 자주 쓰게 된다. 듣는 상대방에게는 그닥 멋지게 들리지 않을 수 있는 투박하고 무딘 접속사이지만, 나름대로 포용적인 단어다. 지금까지 어떤 이야기로 흘러갔든 상관없이 이 단어만 있으면 명쾌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이나, 언제든 쓸 수 있다는 점에서.
하여튼 그렇다. <하여튼>의 매력에 대해서 설파해 봤는데, 읽는 이들에게 설득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방금 <하여튼>에 대해서 검색해 봤다가 내가 쓴 글보다 <하여튼>의 매력을 잘 설명해 주는 짤을 보고야 말았다. <하여튼>의 매력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면 이 짤이라도 봤으면 좋겠다. 하여튼 사람들 웃기다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