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한 해가 다 다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해야 할 때가 오고 있다. 원래 이맘때쯤의 나는 17잔의 음료를 채우기 위해 스타벅스에 열심히 방문하거나, 수많은 다이어리 사이에서 즐거운 고민에 빠지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한 해의 마무리와 시작에 즐거움을 줬던 다이어리는 연말에는 항상 비어있는 페이지와 함께 죄책감으로 돌아왔다. 매년 10장 미만으로 쓴 다이어리는 이걸 보관해 둬야 할지 버려야 할지 참 애매한 상태에서 짐이 되고 만다.
어언 그런 생활을 반복한 지 20년쯤 지나 더 이상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아 무뎌질 때쯤 5년 다이어리를 쓰기로 결심했다.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라는 책에서 매일을 쓰기 위한 팁으로 ‘5년 다이어리’를 추천받고 나서였다. 비법을 전수받은 지 3년이 지난 지금 매일 쓰는 사람은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종종 쓰는 사람은 되었다. 지금까지 다이어리는 한 번도 끝까지 쓴 적이 없지만, 방법을 옮겨가면서까지 계속 쓰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뭘까?
기록이라는 행위에 앞서 ‘기록’이라는 단어 자체를 좋아한다. 이 단어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대리만족 같은 거랄까. ‘기록’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 전시, SNS 등등 모든 것들은 예외 없이 나의 관심 대상이 되곤 한다. 누군가의 기록을 보는 것은,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 같다. 저 사람은 어떤 것들을 남기고 있고,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그 사람의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타인의 기록을 많이 보다 보면 꾸준하게 기록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다. 나에게는 기록을 잘하는 사람은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수행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기록이라는 단어는 마치 꾸준함, 인내와 동의어처럼 들린다.
꾸준한 기록. 내가 지금 가장 이루고 싶은 목표이기도 하고 지금 가지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도 여전히 5년 다이어리는 채워나가고 있으며, 글쓰계 멤버들과 벌써 3편의 글을 작성하기도 했고, 브런치 작가에도 도전했다. 기록에 대한 실패를 꾸준히 경험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성공하는 날도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