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를 배우다 보면 유독 아름다운 단어를 만날 기회가 생긴다.
그 나라 사람들은 모두가 아는 일상적인 표현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한 단어로 함축되기 어려운 것들을 배우는 일은 나의 세상을 표현할 수단이 늘어나는 일이기에 늘 즐겁다.
일본어에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뜻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木漏れ日(코모레비)다.
일본의 여름은 지독하게 덥다. 습도가 높아 걸을 때마다 땀이 흐르고 유달리 채도 높은 풍경에 두 눈은 찌푸려지기 일쑤다. 불쾌지수가 높은 계절, 손수건을 쓰지 않으면 엉망이 되던 눈가, 어지럼증을 느끼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먹었던 포카리스웨트의 맛이 내가 기억하는 일본의 여름이다. 그러나 코모레비라는 단어를 들을 땐 꼭 그 지독하고 숨 막히던 여름 풍경 안에 존재하던 어떤 아름다운 것이 생각난다. 키 높은 가로수가 늘어진 거리 안을 걷고 있던 중 내 발치로 새어 나오던 햇볕 같은 반짝이는 것들. 무더위를 조금이나마 식혀주던 그늘 속 환하던 빛무리 속 보이던 작은 먼지들 같은 것들.
코모레비와 비슷한 발음을 가진 단어 중에 ‘코보레루(溢れる)’라는 동사가 있다. ‘코보레루’는 용기 등에 담겨있던 어떤 것이 넘쳐흐를 때 쓰는 단어인데, ‘눈물이 넘쳐흐른다’는 표현을 쓸 때에도 이 코보레루라는 단어가 쓰인다. 그래서일까, 코모레비를 떠올릴 땐 넘쳐흐르는 햇볕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어딘가에 잔뜩 고여있다 어쩌다가 나무 위로 와르르 쏟아지는 햇볕 말이다.
이번 여름, 엄마 아빠와 근처 산책로를 걷다 문득 코모레비 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는 나무들과 그 사이에 넘쳐흐르고 있는 빛들이 우리 머리에, 또 발치에 내려앉아있었다. 그날의 산책은 유독 잔잔하고 여유롭고 조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