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나아가야만 할 때, 피하고 싶지만 절대 피할 수 없는 일을 앞두고 있을 때, 결국 이 모든 것을 모조리 겪어야만 끝난다는 것임을 느꼈을 때 소용돌이치는 수많은 감정들 속에서 가장 컨트롤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고립되었다는 느낌이었다. 고독은 선택이 가능하지만 고립은 선택이 가능한 감정이 아니다. 어느 날 보니 그렇게 되어버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백하자면 자주 고립되어 있었고, 대부분 뒤늦게 알아채는 멍청한 스타일이었다. 자의에 의해 벌어진 고립은 대게 끝없는 자기혐오를 불러일으키곤 했고, 타의에 의해 벌어진 고립은 대상자들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 억울해 하기 바빴다. 돌이켜보면 무엇 하나 인간의 삶에 도움 되는 감정이 아니다. 그런 감정들은 숨기기도 어렵고, 금세 들통이 나버려 도움을 받기도 쉽지가 않아진다. 처음 느꼈던 고립의 두려움이 아득한 먼 옛날로 느껴질 만큼 반복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죽지 못하니까 살아야만 하는 나는, 어쩌다 보니 고립되어 있는 나는,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려야 하고 멱살 잡고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을.
‘그럼에도’는 내가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찾아냈고 주문처럼 자주 되뇌이는 말이다. 쓰면 쓸수록 모든 불의의 경우의 수를 무력하게 해주는 마법의 문장이랄까. ‘그럼에도’라는 말을 소리 내어 말해버리면 바라는 대로 되지 않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더라도 현재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가 되어 주었고, 끝이 아득한 오르막길 같은 시간을 앞두고도 억울함에 휩쓸리지 않는 힘이 되어 주었고, 이미 고립되어 버렸을 때 악착같이 뭍으로 기어 나올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리고 사실, 우리는 모두 안다. 인생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은 그럼에도 해야 하는 것 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