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단어에 대해서 쓰려고 생각하니 자꾸 좋아하는 물건만 떠오른다. 예를 들면 지금 까먹고 있는 귤이라던가, 취미 생활인 필름 카메라라던가. 아니면 자꾸 누가 내게 해주는 말이 떠오른다. 집에 도착하면 당연한 듯 외치는 남편의 ‘루리~’라던가, 어린 시절 아프다고 말하면 ‘한숨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했던 답했던 수화기 너머 엄마 목소리라던가.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나는 쓸 수 있고 또 단어라 우기면 우길 수도 있겠으나, 사실 그게 단어는 아닌데...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 ‘뚱딴지’라는 단어가.
첫 조카가 태어나고 나는 사랑에 빠졌다. 얼마나 사랑했느냐면 토요일이면 무조건 조카가 사는 울산에 내려갔다. 말도 통하지 않는 조카 얼굴을 보고 다시 일요일이면 출근을 위해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를 탔다. 나의 사랑은 꽤 오랫동안 유지되었으므로, 조카가 숫자 1, 2, 3을 알게 되자 나는 가족 중에 조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 1위가 될 수 있었다. 물론 그는 점점 모든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1위를 부여해서 가족 중에 1위가 아니었던 사람은 남동생 정도였지만.
아무튼 내 사랑은 조카가 다섯 살이 되어서도 계속되었는데, 조카도 그걸 아는지 내 방으로 동화책을 한가득 가져와 읽어 달라고 요청하고는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발견한 것이다. ‘똥’, ‘방귀’, ‘엉덩이’ 말고 다섯 살 아이가 웃음보를 터트리는 마성의 단어 ‘뚱딴지’를. 그날 밤 살면서 가장 많이 ‘뚱딴지’를 외쳤던 것 같다. 사실 동화책도 한 두 권이지, 3시간 내내 같은 책을 반복해 읽다 보면 사랑의 크기와는 별개로 어디든 도망가고 싶어지 는데, 책 속 한 문장보다는 ‘뚱딴지’를 3번 외치는 게 효율이 좋았다. 살면서 가장 ‘뚱딴지’를 많이 외친 밤이 아니었을지.
이제는 조카도 많이 커서 ‘뚱딴지’를 외친다고 웃진 않을 것 같지만, 문득 ‘좋아하는 단어’를 떠올리라고 하니 생각났다. 사전에 보면 ‘뚱딴지’는 사실 누군가를 놀리기 위해 쓰는 말이라는데, 나한텐 평생 다섯 살 조카의 웃는 모습 중 하나로 기억될 것 같다. 가끔 다섯 살 어린이들을 만나면 괜히 외쳐보고는 한다. ‘뚱~딴~지~’라고. 백이면 백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