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말에 한 번에 답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마음속 우열을 가리기 힘든 여러 선택지가 동시에 존재하거나 그 정도는 아닌데? 라는 생각 때문에. 하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좋아하는 도시가 어디냐 물으면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LONDON.
태어나서 나의 첫 배낭 여행지가 런던이었다. 하지만, 그 이유로 런던이 나의 최애는 아니다. 드라마 속 자주 등장하는 첫 만남의 운명적 사랑처럼 런던은 첫인상이 좋았다. London Heathrow 공항에 도착해서 도시 중앙으로 가기 위해 기차를 이용했다. 처음엔 지하로 기차가 이동해서 여기가 런던인지 서울 합정동인지 구분하지 못했지만, 긴 터널을 지나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지상으로 기차가 빠져나왔다. 그때! 그 찰나의 순간! 내 눈 앞에 펼쳐진 런던의 첫인상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우중충한 날씨에 보슬보슬 내리는 비. 질서 있게 일정한 규칙으로 쌓인 벽돌 건물. 비를 맞아 채도가 살짝 낮아진 다홍빛 지붕과 그 위에 줄 맞춰 튀어나와 있는 굴뚝. 상상이지만 만약 셜록 홈스나 지킬 앤드 하이드 박사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내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풍경 속에서 지붕 위를 뛰어다니고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여행 중 유일하게 살이 쪄서 오는 나라가 영국이다. 무성한 소문에도 불구하고 난 런던에서 늘 맛있게 먹은 기억뿐이다. 기네스, 아드벡, 라프로익… (다 술이구나…ㅎㅎ) 알코올을 빼면 나는 영국 조식을 특히! 좋아한다. 주로 빵/베이컨/버섯/오믈렛/콩을 한 접시에 담아 먹는데, 요리에 기교가 들어있지 않고 오히려 단순하고 담백하고 소박하다. 이 중 나의 최애는 콩이다. Heinz beanz 제품이 유명한데 달짝지근한 소스에 절인 강낭콩이 캔에 담겨있다. 종종 한국에서도 영국이 생각날 때면 이 콩을 사 먹는다. 한가지 꿀조언을 공유하면 부대찌개에 이 콩을 넣어 먹으면 정말 맛있다.
나에게는 영국에서만 할 수 있는 버킷리스트가 있다. 바로 ‘Barbour 재킷을 입고 런던 돌아다니기’. 첫 런던 여행 중 런던 주민들이 깔끔한 정장 위에 바버 재킷을 입고 보슬비를 맞으며 길거리를 거니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당시 뚜벅이 여행객이자 대학생인 나에게 바버 재킷은 꽤 비쌌다. 그래서 꼭 언젠가는 재킷을 입고 런던을 돌아다니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이 버킷리스트는 2022년 겨울 달성할 수 있었다. 런던 시내에 있는 가장 큰 바버 재킷에서 바버의 가장 유명한 라인인 Beufort를 사서 여행 내내 입고 다녔다. 재킷 하나 걸쳤을 뿐인데. 피카딜리 길거리에서 난 가장 행복한 그리고 가장 성공한 사람이 되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