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도시가 어디냐면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제대로 알 수 없는 도시를 좋아한다. 무슨 말이냐면, 일단 번역기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쓰는 곳이 좋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경험하고, 머리를 비우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어와 영어를 쓰는 곳이면 내가 자꾸 모든 걸 읽고 이해하려 드니까. 그리고 해당 도시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 별로 없는 곳이 좋다. 선입견 없이 방문해서 나만의 지식을 쌓게 되는 경험이 좋으니까.
대학교 때 번역기 없이는 세탁기도 돌릴 수 없는 곳에서 6개월 정도 지낸 적이 있다. 당시 나는 한국에서도 세탁기를 돌려본 적이 없었던 지라, 태어나서 처음 보는 언어로 쓰여진 세탁기 버튼의 의미를 위치로 대강 때려 맞출 수도 없었다. 이럴 줄 알고 미리 다운로드해 둔 구글 번역기를 켜고 사진 번역 기능을 돌렸다. 음, 이게 ‘시작’ 버튼이고, 이게 ‘탈수’라는 뜻이고, 오, 여기에 세제를 넣는 거군. 이런 와중에 매우 신났던 기억이 난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많은 것을 할 수 있던 곳에서, 매 순간 알아내려 애써야 하는 환경에 놓였다는 사실에.
어떤 도시의 문화와 언어를 모른다는 건, 매 순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는 말도 된다. 식당에서, 슈퍼에서, 전철에서, 학교에서. 한국에서는 정말 쉬웠던 일인데, 언어를 모르는 곳에서는 간단한 일조차 진땀을 흘렸다. 계산할 때 영수증 줄까? 라는 말을 못 알아들어 눈치껏 고개를 끄덕인다거나, 수돗물을 그냥 마시는게 평범한 일인 걸 몰라서 목 마르다는 나한테 수돗물을 주는 친구 앞에서 벙찐다거나 했던 일 같은 것들. 한국에서는 큰 노력 없이 이뤘던 것들을, 이 도시에서는 정말 힘들게 얻어내야 한다고 느낄 땐 조금 절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언어와 문화가 낯설기 때문에 일상의 매 순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고, 온 힘을 다해 무언가를 원하는 감정을 느껴보기도 했다. 전혀 읽을 수 없던 표지판과 메뉴판을 조금은 이해하게 됐을 때의 기쁨도 참 컸던 것 같다.
이 글을 쓰고 있자니 좋아하는 도시와 얽힌 수많은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엔 그게 추억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임을 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도시가 어디냐고? 그건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려고 한다. 혹시나 다른 도시들이 섭섭해 할 수도 있으니까. 언젠가 날씨 좋은 계절에 내가 좋아하는 도시를 다시 한번 방문할 기회가 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