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때다. 이 도시와 인연이 시작된 것은. 서울. 대한민국 전국의 고등학생이 가고 싶어하는 도시. 나 역시 그랬다. 서울에만 가면 모든 근심걱정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고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하면 나의 특별한 삶이 시작될 거라 믿었다.
열아홉 살의 12월, 수능을 죽 쑤고 집에 틀어박혀서 홀로 무거운 공기를 자처할 때였다. 망했다고 생각한 논술 시험의 합격 발표 안내를 받고서야 무거웠던 집안 분위기가 경쾌해졌고, 나의 서울 생활도 시작됐다. 애지중지 키운 자식이 새벽에 눈을 비비며 등교하는 것을 걱정스럽게 여긴 부모님 덕분에 자취도 시작했다. 당시 전문직에 한이 맺혀 계셨던 부모님은 딸이 경영 대학에 갔으니 능히 회계사를 준비하리라 기대한 모양인데, 그 기대는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무참히 깨졌다고 한다. 와장창. 그 이야기를 쓰려면 A4 한바닥으로도 모자라니 지금은 서울 얘기나 마저 해야지. 어쨌거나, 고등학교 3년 내내 기숙사에 갇혀서 공부만 한 덕분에 나에겐 남아도는 에너지가 왕왕했고, 술은 잘 먹지도 못하면서 이곳저곳을 쏘다니느라 자취방은 거의 잠만 자는 공간으로 썼다.
그렇다고 재밌게 놀았느냐면 딱히 그건 아니었던 게,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교양을 쌓는 지성인이 되고 싶어 들어간 인문학 동아리에서 시사 이슈에 관심이 많은 선배들을 만나 따라다니는 대학 생활을 보냈다. 덕분에 나의 이십대 초반은 길거리에서 벌어진 일들 투성이다. 때는 FTA 이슈라던지 반값 등록금 시위라던지 세월호 집회 등 국가적인 사안에 대한 집회가 많이 벌어질 때였고 덕분에 이십대 중반까지는 서울 이곳저곳을 사람들이 꽉꽉 들어찬 거리의 모습으로 기억했다. 종각역, 광화문, 시청 앞, 여의도광장 등. 한때 거리에서 오들오들 떨며 물대포를 맞을 때는 왜 이렇게 세상이 우리에게 잔인하게 구는 건가 싶어 수없이 회의했던 기억. 2010년대 초반의 서울이 그랬다.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컨셉에 심취해 있었던 그 시절, 기억 곳곳의 배경에 서울이 있었다. 뜨겁고, 시끄럽고, 혼란한 모습으로.
학교를 졸업하면서 나의 지성인 코스프레도 끝나고, 자연스레 생활인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서울은 다른 의미로 잔인한 존재가 되었는데, 서울에 있는 회사로 취직을 하게 되면서 집을 구해야 했을 때가 그랬다. 대학 생활은 부모님이 마련해 준 방에서 편하게 숨 쉬고, 아르바이트는 열심히 했다지만 4년 내내 사회 이슈를 쫓아다닌다고 돈 걱정은 젬병이었던 온실 속 화초가 뭘 알려나. 오빠와 함께 살았던 서울역 근처의 60년대에 지어졌다는 다세대주택 투룸은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웠다. 그런데도 집값은 무지막지했으니, 이렇게 매몰찬 서울을 대체 왜 그렇게 좋아하나 싶다.
좋아하는 도시에 대해 쓰면서 왜 이렇게 힘든 기억만 나열하나 싶지만, 약간의 구질구질함과 지질함과 미움이 섞인 마음이 애정이라고 믿는 사람으로서 좋아하는 도시에 대해서 쓰자니 역시 서울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스톡홀름 증후군이 아닐까) 원래 애정이란 그렇게 심플하고 가볍고 경쾌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쓰다 보니 알게 된 이 감정은 좋아한다기보다 사랑인 것 같고, 사랑이라기보다 애증이 아닐까 싶긴 하지만.
구구절절 피곤한 얘기만 늘어놓았음에도 여전히 이 도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생활이 편리하고, 서비스가 좋고, 문화공간이 많아서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그런 거라면 그냥 신도시에 가서 살거나 깨끗하고 교통이 좋은 수도권에 사는 것도 편하니까. 굳이 나열해 보자면, 늘 시끌벅적한 광화문 광장도, 귀엽고 아기자기한 공간이 많은 연희연남홍대합정 부근도, 자전거도로가 잘 놓인 한강공원도, 따뜻하고 예스러운 북촌이나 서촌도, 한때는 데이트 명소였던 대학로도, 이제는 패션 브랜드의 성지가 된 성수도, 그 외 늘 바뀌는 서울의 힙플레이스도… 곳곳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했던 추억이 많아서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다.
한때는 나의 우상이자 낭만이었던, 지금은 너무 함께한 지 오래되어 조금은 애정이 시들해져 버렸지만 미워할 수는 없는 나의 도시 서울. 언젠가는 여길 떠나 다른 곳에 둥지를 틀더라도 내 청춘과 함께였던 이 도시를 좋아하지 않기란 어려울 것 같다. 부디 날 바깥으로 내쫓지 말기를, 언젠가는 내가 발 뻗을 곳이 이곳에 조금 더 넓어지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