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스웨덴
스웨덴은 남편이 (결혼 전) 나와의 미래를 꿈꾸며 많은 고민과 시도 끝에 선택한 나라다. 그 이유 만으로 나는 ‘스웨덴’에 이유도 조건도 없는 애정이 생겨 버렸다. 비슷한 듯 다른 매력을 가진 스웨덴의 도시들도, 뭐든지 적당한 것을 최고로 생각하는 정서도, 스몰토크는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분위기도, 모든 연령대가 수준급 영어를 구사하는 것도, 어디든 널려있는 공원과 오래된 키 큰 나무들 덕분에 슈퍼에 가는 길이 숲 속에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피카’와 ‘라곰’ 같이 요즘은 많이 알려진 스웨덴 다운 문화도, 모든 게 그냥 다 좋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을 꼽는다면 단연 스웨덴의 여름이다. 북유럽은 겨울의 나라, 많이 추운 곳이라고 다들 알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몇 번의 겨울을 그곳에서 보내고 나니 추위는 한국이 더 매서울 때가 많았다. 북유럽의 겨울이 혹독한 이유는 추위도 있지만 ‘짧은 해’가 가장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겨울의 스웨덴은 오후 3시면 캄캄해지기 시작하는데 오후 5시면 상점들도 대부분 문을 닫아 거리는 더욱 고요해진다. 한국의 새벽 3시 같은 오후 8시. 조명도 많이 꺼져있는 캄캄하고 고요한 밤거리를 걸을 때면 나도 모르게 휴대폰 시계를 자꾸 확인하며 “지금이 8시라고?” 남편에게 몇 번을 되묻고 허허 웃었다. 스웨덴은 10월 말부터 겨울 냄새가 나기 시작해 이듬해 4월까지 눈이 올 만큼 겨울이 길다. 고요한 밤, 나가서 놀 곳도 없는, 캄캄하고 춥고 긴 겨울에 있을 곳은 집뿐이다. 왜 북유럽에 아름다운 가구 브랜드가 많고, 많은 이들이 수준급 집 꾸미기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곳의 겨울을 겪으며 자연히 알게 되었다. 그렇게 길고 지루한 겨울을 보상하는 걸까. 스웨덴의 여름은, (호흡) 특히 여름에만 볼 수 있는 녹음은 정말 찬란하기까지 하다. 헐벗었던 나무들이 초록 잎으로 잔뜩 살을 찌우고, 마로니에 나무들은 곳곳에서 포도송이 만한 꽃들을 잔뜩 달고 있다. 햇빛이 강렬해 목덜미가 까맣게 타는데 땀이 나지 않는 것도 신기하다. 햇빛을 핑계로 한국에서는 잘 쓰지 않는 선글라스를 쓰고 선크림만 바른 얼굴에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외출하곤 했는데, 유럽사람 다 된 것 같다며 스스로를 멋있어할 때도 있었다.
카페들은 이 시즌에 공식적으로 아이스 메뉴를 판다. 유럽 대부분의 카페들은 ‘아이스’가 붙은 메뉴를 잘 팔지 않아서(체인점 제외) 주문을 할 때 서로가 약간의 번거로움이 생기는데, 이 시즌만큼은 눈치 보지 않고 ‘아이스’ 메뉴를 시킬 수 있다. 단골 카페 바리스타는 “이제 아이스커피 주문하기 편해졌네!” 라며 웃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백야’다. 저녁을 먹고 한숨 돌리면 밤 8시. 창밖을 보면 오후 3시 같다. 겨울에는 다들 어디 있었을까? 거리에는 어디론가 걸어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모두가 ‘지금이다’라는 마음인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도 빠질 수 없지. 어쨌든 나간다. 가볍게 동네 한 바퀴만 돌고 오자, 공원 벤치에 조금만 앉아있다 오자 하며. 가끔은 돗자리와 와인도 챙겨간다. 밤이 없는 밤. 무뚝뚝하고 필요한 말만 하기로 유명한 스웨덴 사람들도 어쩐지 이 시즌에는 들떠 보인다. 1년 치 햇빛을 채우느라 바쁜 모습들을 보고 있자면 귀엽기까지 하다. 스웨덴 여행을 계획한다면 단연코 5월 말에서 7월 초, 일정 중 하루 길게도 말고 한 시간 정도는 공원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꽃 향기 나 서양배 맛이 나는 스파클링 워터(슈퍼에 널려있다)나 아이스커피를 들고 곳곳에 즐비한 아무 공원에 가서 포도송이 같은 꽃을 가득 달고 있는 마로니에 나무 밑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기를 바란다. 따가운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즐기며 어딜 봐도 초록만 가득한 풍경에 녹진하게 스미는 황홀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