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시, 김포 20대의 끝자락, 모든 것에 지친 상태로 갑자기 한국으로 귀국해야 했던 때가 있었다. 떠나갈 때까지만 해도 당분간은 돌아올 일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급하게 모든 것을 정리하고 돌아오게 된 것이다. 결정은 그제, 귀국은 오늘, 대충 이런 일정이었기에 마땅한 비행기표가 없었고 급한 대로 환승이 복잡하고 어렵지만 김포로 들어올 수 있는 비행 편으로 귀국하게 되었다. 유럽에서 오는 것치곤 특이한 경로였다. 중국의 푸동인가 베이징인가 이제는 기억도 안나는 공항에서 환승을 하고 돌아오는 길, 이제 김포공항 도착까지는 5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낯익은 아파트 전경과 선명하게 빨간색으로 쓰인 간판, ‘월드 사우나’. 나의 동네였다. 그 순간까지 어딘가 비장했던 내 마음에 웃음이 퍼졌다. 팽팽했던 긴장감이 팍 풀리는 순간이었다. 비행기로 5분 실화냐, 란 실없는 생각과 월드 사우나가 보일 정도로 낮게 날고 있었구나 라는 감상과, 길고 길던 무언가가 끝나고 나는 안전한 집으로 돌아왔구나 하는 안정감과 안도감이 동시에 들었다. 청소년기만 해도 김포는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곳, 떠나고 싶은 곳이었다. 김포라는 이름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안개가 많이 끼는 아침도, 놀거리 없는 집 주변도, 묘하게 깨끗한 공기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대학교에 들어가며 일본에 살게 된 이후에도 비슷했다. 김포는 항상 부연설명이 필요했다. 그렇다, 서울 하면 누구나 대충 아 도시구 나하고 알아차리는 반면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 김포라 말하면 (당연히도) 모르는 게 부지기수라 나는 항상 어떤 도시를 빌려 김포를 설명해야 했다. 언젠가는 ‘사이타마 같은 곳’ 또 언젠가는 ‘치바 같은 곳’, ‘서울 옆 도시’로 김포는 정의됐다. 만 30살이 되기까지 운 좋게 여러 도시들을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 그중에는 정말 화려하지만 특유의 쌀쌀맞은 얼굴이 기억나는 도시도 있었고,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도시도, 사람들이 정겹던 곳도, 내 미숙했던 시절을 기억하는 도시도 있었는데 어떤 곳을 제일 좋아하냐는 질문에는 쉽사리 대답하기 어렵다. 여기엔 나의 기억력이 특출 나게 좋지 않은 탓도 있을 것 같은데, 딱히 나에게 김포만큼의 임팩트를 준 곳이 없는 탓도 있을 것 같다. 5분마다 머리 위로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김포, 이전에는 Kimpo였지만 Gimpo가 된 김포, 안개가 자욱한 밤에는 유령도시 같은 으스스함을 주는 김포, 금을 뜻하는 金에 물가 浦 자를 쓰는 김포, 서울보다 꼭 1도씩 낮은 이상한 도시. 특별한 점도 없고 놀 곳도 마땅치 않고 아직까지도 이 도시는 부연 설명이 있어야만 하지만 그래도 이곳만큼 내가 안정할 수 있는 곳도 없다. 하남 출신 윤 씨와 인천 출신 서 씨가 어쩌다 정착하게 된 도시가 당분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일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