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숙명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에 8시간, 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동을 버티는 시간으로 보내기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 어찌저찌 마케터가 되었다.
그럼 좋아하는 일을 찾았으니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일까? 또다시 한번 직장인의 숙명(?)답게 여전히 찾아오는 월요일은 두렵고, 금요일 저녁이 되면 신나며 직장에서 있는 시간이 온전히 즐겁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 직업을 꾸준히 좋아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내가 이 좋아하는 일을 찾게 만들어 준 것은 온전히 ‘회의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럿이서 모여 의논한다는 뜻을 가진 회의는 언젠가부터 우리에게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인식을 더 많이 갖게 된 것 같다. 회의 시간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는 나조차도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회의를 긍정적/부정적 이분법적으로 나눈다면 부정적인 회의를 경험한 수가 월등히 더 많다. 그렇지만, 긍정적인 회의 경험은 좋아하는 시간이라는 질문에 ‘회의 시간’이라는 답이 나올 정도로 나에게는 언제나 황홀한 순간이었다.
나에게 ‘회의라는 것이 재밌는 거구나…’를 느끼게 해준 건 대학생 조별과제 이후였다. 초등학생 때 부터 이어진 긴 수험생활 시절에는 내 생각과 친구들의 생각보다는 하나의 정답만이 중요했다. 내가 시험 점수를 잘 받는건 누군가보다 높이 올라간다는 것이었고, 시험 점수를 못 받는건 누구보다 내려갔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모두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머리를 맞대어 하나의 결과물을 잘 내야만 모두가 같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경험이 꽤나 신선했다.
‘세상 사람 모두가 다르다’라는 문장은 익히 많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체감한 것은 회의를 통해서였다. 막연하게 “모두가 다르지~” 하는 것과 “좋아하는 시간이 언젠가요?”라는 질문에 여러 구성원의 답변을 듣는 것은 아예 다르다. 회의도 이와 마찬가지로 “저 사람은 왜 저런 말을 할까?”, “저 사람은 어쩌다가 저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까?” 등등 세상의 모든 다양함과 마주치는 시간이다. 그리고 모두가 다르다는 이 지점이 바로 성공적인 회의를 이끌어내기도 하고 실패한 회의로 끌어내리기도 한다.
나와의 다름을 차이로 받아들였을 때 회의는 실패로 끝나고, 나와의 다름을 다양함으로 받아들이면 그 회의는 성공으로 끝난다. 나와의 다름을 차이가 아닌 다양함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바탕에 있어야 한다. “왜 저런 말을 할까?”가 “아 저 사람은 이래서 그런 거였지”가 되려면 그 사람에 대한 관심과 같이 보낸 시간들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긍정적인 회의를 경험하기가 매우 힘들다. 왜냐면 구성원 중 단 한 명이라도 팀원에 대한 이해나 관심을 가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되는 순간 우리는 절대 자기의 생각과 기분을 있는 그대로 터놓을 수 없고 서로의 우주를 이해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진화의 흔적으로 본인과 다른 것은 위험하다고 느껴 다르다는 것을 한 번에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한다. 본성을 거스르고 애정과 관심으로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다름을 다양함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그 시간들. 그 시간들은 너무나 소중할 수밖에 없다. 나한테 회의란 나 혼자는 절대 해낼 수 없는,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주는 엄청난 도구의 느낌이다. 내가 그 시간들을 경험할 수 있게 도와준, 지금까지 본인의 우주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준 같이 회의를 했던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더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앞으로 부정적인 회의보다 긍정적인 회의 경험이 인생에서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새로운 목표도 생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