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을 깎으며
주니어 시절 만났던 한 선배는 내게 일을 맡기며 “컴퓨터로 먼저 하지 마. 노트에 생각부터 정리해”라는 말을 늘 덧붙였다. 능력 있고 일 잘하는 선배가 해주는 말이기에 곧잘 따랐고 생각을 먼저 정리하는 행위가 왜 중요한지 머지않아 깨우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연필’을 쓰면 창의력이 올라간다는 아티클을 어디서 본 이후로 ‘컴퓨터로 작업하기 전 노트에 연필로 생각을 정리하는 것’ 은 일종의 루틴으로, 중요한 일일수록 하나의 의식처럼 하게 되며 자연스럽게 습관으로 스며 들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루의 몫을 나름의 정성으로 해내고 나면 연필은 잔뜩 뭉툭해져 있다. 얇고 곧은 선의 글씨는 어느새 두껍고 흘러가는 글씨가 되어 종이 위에 있다. 그건 일종의 신호가 된다. 집에 가야 한다는 신호. 빨리 집에 가서 저녁밥도 먹어야 하고, 고양이도 봐야 하고, 무엇보다 밤에는 마음을 눕혀야 하니까.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기 바쁘니 뭉툭해진 연필을 다시 볼 새는 없다. 집에서 잔뜩 늘어져 있던 밤이 지나 아침이 오면 몸을 일으키고 세수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몸과 마음이 깨어나기를 채근한다. 하지만 이 마음이라는 게 한번 눕히고 나면 다시 앉혀 두기가 좀처럼 어렵다. 하지만 내게는 믿는 구석이 있다. 책상 앞에 앉아 어제 쓰임을 다하여 뭉툭해진 연필을 깎는 것이다. 마음도 제 자리에 앉기를 기다리며.
어느 날은 칼을 가는 무사의 마음이 필요하여 커터 칼로 정성을 들여 연필을 깎았다. 사각사각 연필이 깎이는 소리가 칼을 가는 소리 같다는 생각을 하며.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한참 연필을 깎다 보면 한껏 길고 뾰족한 연필심이 된다. 연필에서 나온 나뭇조각과 연필심 가루를 휴지로 꼼꼼하게 훔쳐내고 자리에 앉으면 어느새 마음이 제 자리에 앉아 등을 곧게 펴고 하루의 몫에 정성을 다할 준비를 마친 게 느껴진다.
또 어느 날은 ‘무사한 안녕’ 만을 바라는 할머니의 마음이 되어 뭉툭하고 짧아진 연필 들을 모두 꺼내 살핀다. 짧으니까 오히려 더 매끈하고 예쁘게 깎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연필깎이를 쓴다. 짧은 연필을 연필깎이로 깎으려면 넣는 것부터 번거롭다. 요리조리 손으로 만져가며 연필깎이에 욱여넣고 길이가 짧아 헛돌기 일쑤이니 손잡이를 돌리는 내내 연필의 끝을 살짝 눌러 줘야만 한다. 매끄럽고 뾰족해진 것만으로도 짧은 연필들은 한결 예뻐진다. 그걸 바라보고 있자면 약간의 안도감과 뿌듯함을 느낀다. 그날은 길고 뾰족한 새 연필도 있지만 굳이 짧은 연필들 중에 마음이 가는 것을 골라 하루의 몫을 해낸다.
어제의 열심이 보이는 뭉툭과 오늘의 열심을 다짐하는 뾰족이 보태져 연필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는 게 그렇게 좋을 수 없다. 매일 아침 짧아지는 연필을 보는 것은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내게 일종의 증명이 되어줬다. 늘 타인에게 나의 능력을 증명하기 바쁜 삶 속에서 나의 열심을 증명하는 연필이 위로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매일 아침, 나도 모르는 새 일도 마음도 더 나아졌다. 연필을 깎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