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지 않아도 되는 시간
중학교 3학년 때까지만 해도 다섯 살 때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렸던 것 같은데, 지금은 집중력은 물론, 기억력도 도둑맞아 버렸다. 요즘은 즐거웠던 순간도 슬펐던 순간도 머릿속에 그리 오래 남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이건 정말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될 거라고. 인공지능이 사진들을 모아 ‘몇 년 전 오늘’이라고 보여주지 않아도, 우리는 매년 여름이면 ‘그때 정말 즐거웠지’라고 말하게 될 거라고.
함께 글을 쓰는 사람들과 종종 여행을 간다. 이 모임은 모일 때마다 즐겁지만, 이번 여름 여행은 특히 더 즐거워 깊이를 모르고 빠져버렸다. 어느 정도 재밌었냐고 묻는다면, 다시 이렇게 재밌고 싶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들과의 여행이 늘 재밌는 이유를 발견하고 싶어서, 공식을 찾아보고 싶어 머리를 굴릴 정도로 재밌었다. 장소가 좋았나? 날씨가 좋았나 아니 역시 사람이 덕분인가? 혹시 모임… 회비가 많았나? 그날 내가 내린 결론은 ‘몰입’. 우리는 모두 그 시간 ‘즐거움’에 몰입해서, 되려 서로의 즐거움을 살피지 않았다 그래서 그해 여름 중, 가장 즐거웠다.
며칠 전 넷플릭스 다큐 ‘나를 바꾸는 용기’를 봤다. 강연가 ‘브레데브라운’은 수치심 전문가라고 본인을 소개하며, 이런 질문을 꺼냈다. 소속감의 반대말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그건 바로 어울림이라고. 어울리고자 하는 그룹을 살피고 평가하고 그들의 기준에 나를 맞춰나가는 것이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느끼게 되는 소속감의 반대에 있다고. 그때의 여행이 좋았던 건, 모두 어울리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 그대로 소속된 상태였기 때문일까. 다른 이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고 나의 즐거움에 집중한 것, 모두가 함께, 동시에 그런 시간을 보냈기에, 덕분에 모두 좋은 시간을 보냈던 게 아닐까.
‘좋아하는 시간’을 생각하며 나는 혼자 있는 게 좋은지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게 좋은지, 어떤 요일을 좋아하는지, 혹은 무언가를 하는 시간을 좋아하는지 계속 생각해 보았지만,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다면 그게 어디든, 언제든 상관없는 것 같다. |